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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어디가] 전북으로 떠난 보타닉 원정대…생태 여행에서 얻은 위로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20-05-0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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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를 잠재울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풀잎 향이 진동하는 숲길을 걷거나, 대숲 안에서 명상을 하고 밤의 성곽 길을 걷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며 생겨난 코로나19. 인간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인도에선 30년 만에 네팔 쪽 히말라야가 보이기 시작했고 브라질 해변에선 멸종위기 거북이 부화했으며, 베네치아 운하에는 돌고래가 돌아왔다. 인간이 떠나니 자연이 돌아온 것이다. 사람이 떠난 사이 제 모습을 찾은 고창의 습지와 정읍의 숲길을 걸었다. 생태를 교란하지 않고 여행하는 ‘보타닉 원정대’ 1호 원정대원으로서 말이다.
고창 운곡습지
사진설명고창 운곡습지
정읍 월영습지와 솔티숲길은 2018년에 생태관광지로 지정됐다. 사진은 월영습지, 주민이자 로컬 생태해설사인 김광열 에코매니저, 원래는 주민 쉼터였지만 6.25 때 인민재판을 하던 자리로 바뀌었다.
사진설명정읍 월영습지와 솔티숲길은 2018년에 생태관광지로 지정됐다. 사진은 월영습지, 주민이자 로컬 생태해설사인 김광열 에코매니저, 원래는 주민 쉼터였지만 6.25 때 인민재판을 하던 자리로 바뀌었다.


사람이 없으니 자연이 돌아왔다

히든 우드, 정읍 솔티숲

비가 와서 낭패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비에 젖은 풀잎은 생기를 머금었고, 산자락에 걸린 물안개는 몽환적인 산수화를 그려냈다. 하지만 김광열 에코매니저는 속이 탄다. “원래는 뒤로 불출봉, 망해봉, 저 높은 서래봉까지 세 봉우리가 다 보여요. 비만 안 왔어도(다 보이는데), 약올라 죽겠당께, 쯧쯧.” 에코매니저는 말하자면 ‘생태계의 문화해설사’다. 각종 생태관광지에서 환경 보전과 안내, 체험, 해설 등의 지속적 운영을 담당한다. 전북의 생태체험 프로그램 ‘보타닉 원정대’는 이 에코매니저와 함께 숲 생태계를 체험한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송죽마을’로 불리는 이곳의 옛 이름은 ‘소나무 터’를 줄인 ‘솔티’. ‘솔티애숲 달빛 탐방’길은 울력으로 농사 짓던 길과 국립공원으로 묶여있던 길을 생태 숲길로 복원한 곳이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생활하던 화전민 터가 남은 오지 산골마을로, 산 안에 숨겨진 보물이 많아 ‘호남의 금강산’으로도 불리는 내장산을 이마에 얹은 채 2010년까지 국립공원과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그 솔티숲길이 2018년에 주변의 월영습지와 함께 국가생태관광지로 지정된 것이다. 생태탐방 마루길에 오르니 내장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데크길을 공중에 스카이워크처럼 만든 것은 땅을 건드리지 않고 숲을 가까이 느끼라는 뜻이다. “전문 생태 해설사가 아니니 부족한 설명을 이해해달라”는 소박한 인사로 설명을 시작한 김광열 에코매니저는 “설악산엔 단풍이 9종 있는데 내장산엔 단풍나무가 11종”이라고 말문을 뗀다. “정읍은 식물의 남방, 북방한계선이 만나는 경계지역으로, 북방한계선 아래 수종의 50% 이상이 이곳에 있지요.” 몸에 좋다는 운지버섯과 그 귀하다는 진노랑 상사화 군락지가 걷다 보면 발길에 차이고, 내장산 띠 달팽이가 물기 촉촉한 풀잎 위를 기어 다닌다. 스님과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숨은 진노랑 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필 날은 언제일까. 편백나무 메타세콰이어 숲이 마치 녹색의 커튼처럼 숲을 열어젖힌 채 객들을 맞는다. 겨울이 되면 눈이 1~2m씩 올 때도 있는데,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내장산을 못 넘어간 눈들이 성질이 나서 패대기 친’ 결과다. 멧돼지가 등 긁는 소나무라, ‘효자손’이라 불린다는 소나무 줄기에는 돼지 털까지 남아 있다. 이번엔 녀석이 마사지를 한다는 진흙밭이 나타난다. 에코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관찰하니 멧돼지 발자국도 선명하게 보인다.

 
루페(Lupe:확대경)로 들여다본 솔방울은 작은 소우주였다.
사진설명루페(Lupe:확대경)로 들여다본 솔방울은 작은 소우주였다.
풍장의 흔적을 복원한 ’초빈’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짚이나 이엉으로 덮어두는 임시 무덤이다, 솔티숲길,
사진설명풍장의 흔적을 복원한 ’초빈’은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짚이나 이엉으로 덮어두는 임시 무덤이다, 솔티숲길,
생태탐방마루길에서 솔티마을까지 이어지는 내장산 솔티 달빛생태숲길은 주민들이 발로 다지며 만든 옛길이다.
사진설명생태탐방마루길에서 솔티마을까지 이어지는 내장산 솔티 달빛생태숲길은 주민들이 발로 다지며 만든 옛길이다.
솔티숲길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처연한 근대사도 간직하고 있다. 원래는 주민 쉼터였던 ‘빨치산 본거지’도 그런 곳이다. 마을 앞 월영습지가 있는 봉우리에서 망을 보다가 국군이 온다는 신호를 하면 빨치산들이 바위 아래로 숨어들었다. “마을 사람들도 많이 숨어들었는데 아기가 울까 봐 입을 막아서 죽은 애도 많았어요. 밤에는 빨치산에게, 낮에는 토벌대에게 시달리며 인민재판으로 동네 주민들이 총살을 당하기도 했지요.”(김광열) 아픈 역사를 지닌 인민재판소를 지나니 초빈이 나온다. 관을 땅 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 두는 ‘초빈(草殯)’은 동물이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새끼줄로 겉을 잘 묶어뒀다가 2~3년 뒤 탈육이 되면 뼈를 정리해 땅에 다시 묻는 1차 장례 풍습이다. 섬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던 초빈이 왜 이런 산간에 있을까. “주로 무덤 자리에 물이 차거나, 땅이 얼어 있는 경우에 좋은 바람을 쐬라는 뜻으로 진행됐다”는 김 매니저의 설명이다. 50년대만 해도 흔했다는 초빈은 이제 유골 대신 마네킹을 품은 채 생태숲길 코스 속 역사로만 남아 있다.

원정대 가방 안에서 확대경인 루페를 꺼내 솔방울을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렌즈안에서 중국 계림을 보았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까마득한 절벽을 보았다고도 한다. 숲길의 마지막 코스인 연터에 도착하자 김광열 매니저가 솜씨 좋게 연을 날린다. 도청에서 나온 젊은 주무관이 연날리기에 여러 번 실패한 후다. 역시 바람에 연을 실려 보내는 것도, 인생에 시름을 실어 보낸 세월만큼이나 내공이 쌓이나 보다. 350년이나 됐다는 연터에서 아이들이 유리가루 묻힌 연줄로 다른 연을 끊을 동안 옛 어른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을 것이다. 원정대원들은 저마다 본인들이 주운 솔방울이며 나뭇잎 등을 평상 위 보자기 위에 내보인다. 솔티애숲이 그려낸 그림이다. 솔티 생태숲은 40분~1시간 20분 3개 코스(1.5~2.5km) 중 고를 수 있는데, 40분짜리 1코스(내장생태탐방마루길-조각공원-편백나무길-인민재판소-초빈(진노랑상사화 군락)-연터-솔티숲-솔티회관)는 비교적 쉬엄쉬엄 걸을 수 있다.

Info 솔티마을(송죽마을) 전북 정읍시 송죽길 25(쌍암동)

정읍 월영습지와 솔티숲길은 2018년에 생태관광지로 지정됐다. 내장산 자락의 계단식 논이 주민이 떠난 뒤 자연 습지가 되었다.

로컬 주민과 함께 하는 생태여행

생태밥상과 떡수리 오형제

 
서울에선 사라졌던 침샘이 숲길을 걷고 나서 받은 생태밥상에서 폭발했다. 특산물인 모시잎으로 재운 돼지갈비 된장찜에 모시밥, 토란과 감장아찌샐러드, 연근 반찬이 올라왔다. 부녀회원들이 셰프와 함께 만든 생태밥상 ‘돼지두레상’이다. 솔티마을에선 매년 10월에 솔티숲길을 걷고 모시 족욕도 하는 ‘솔티모시 달빛축제’가 열린다. 과연 조선시대부터 모시로 유명했던 마을답다.

‘내장산 떡수리 5형제’가 산다는 모시떡집에 들어서니, 해사한 얼굴의 사장이 모시 떡과 차를 내어온다. 5형제 중 장남 김용철 씨다. “노란 수수를 점심 도시락으로 싸오던 게 너무 싫었다”는 중학생 용철 씨는 가난을 벗으려 상경, 떡방앗간에서 먹고 자며 일했다. 가게를 열고 자리를 잡자 용철 씨는 나머지 형제들을 불러 올렸고, 수년 후엔 막내 용원 씨 등 오형제가 각지에서 떡집을 운영할 정도로 자리를 잡는다. 오형제가 객지의 일을 접고 내려온 것은 2004년.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며, 고향 정읍에서 모시 잎을 넣은 떡을 만들어 팔고 체험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떡생떡사(떡에 살고 떡에 죽는다)’ 5형제는 2014년부터 모시떡 사업으로 마을 어르신에게 연금까지 지급해오고 있다. 주민들이 농사 지은 모시 연간 50톤을 kg당 300원을 더 얹어 전량 수매한 돈으로 종잣돈을 만든 것. 덕분에 20년 이상 이 지역에 살고 있는 80세 이상 노인들이 연 120만 원의 연금을 받고 있다. 김을 매지 않아도 되는 모시는 노인들도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농사 일인 데다, 전량 수매하므로 판로 걱정도 없다. 김 사장은 객지를 떠돌던 다섯 형제를 다시 따뜻하게 받아준 고향 주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 연금 사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솔티마을이 키워낸 청년이 고향에 돌아와 마을에 보답을 하고,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것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형태가, 자연과 상생하는 ‘생태 관광’과도 맥이 닿아 있지 않은가.

마을엔 ‘꽃미남’도 있다. 숙박과 정원사 교육이 가능한 ‘꽃담아카데미’ 천막에 들어서면, 6년째 귀농인이자 ‘꽃미남’인 송정섭 박사가 아내와 ‘시민 정원사’들을 양성 중이다. 350종의 식물 공부와 함께 솔방울 가습기 만들기, 꽃과 풀로 손수건 염색하기 코스를 체험할 수 있다. 숲 생태체험장 주변에 모시 수확과 떡 만들기, 새 모이 체험장 등이 함께 모여 있고 에코버딩(새소리 체험), 도자기 체험이 한번에 가능하다는 것이 솔티마을의 장점. 너무 난폭하게 사랑을 나눠 독방에 가둬진 새부터 편지를 전하던 전서구 비둘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와는 거리가 먼 ‘바람둥이’ 원앙까지 낯선 새들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새랑 나무랑 놀아요’에선 모이를 주며 새의 뜨거운 혀를 손바닥으로 체감할 수 있다.

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고창

‘미스터 션샤인’ 고창읍성과 푸른 눈의 수녀

 
1968년부터 한센 환자들을 보살펴온 강칼라(79) 수녀,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했던 고창읍성, 소나무가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연리지는 맹종죽림의 이색 명소다.
사진설명1968년부터 한센 환자들을 보살펴온 강칼라(79) 수녀,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했던 고창읍성, 소나무가 대나무를 타고 오르는 연리지는 맹종죽림의 이색 명소다.
“마주 앉아 가배(커피)도 할 정도면 뜻이 같은가 보오. 사내와 동무도 하오?”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초이(이병헌)가 고애신(김태리)에게 질투를 폭발시키는 이 장면은 고창읍성 동문에서 촬영됐다. 김춘화 해설사를 따라 고애신과 유진초이가 걸었던 동문과 맹종죽 대숲길을 걷는다. 5만 평(16만5000㎡) 안을 그득 채운 3000그루 이상의 소나무숲과 함께 국내에선 잘 볼 수 없는 긴 장대나무숲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소나무가 대나무 줄기를 타고 오르는 연리지, 20m 높이로 하늘을 찌르는 대나무는 그 자체로 고창읍성의 충분한 방문 이유다. 해가 지면 1684m의 성곽을 따라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마치 어둠에 길을 내듯 야간에 걷는 성곽길은 낮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을 선사한다. 고창읍성은 밤 10시까지 개방된다.

다음 날은 고창 호암마을엘 들렀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센병 환자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은 48가구 70명이 살고 있지만 처음엔 세 가족이 전부였다. 호랑이를 닮은 바위를 품은 산을 병풍처럼 두른 호암마을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로, 꼭 신자가 아니라 해도 마을 전체가 안온히 안아주는 평화로움 가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968년, 이탈리아 북부도시에서 이곳으로 자원해 온 강칼라 수녀, 당시 스물 여섯 살의 달로네 리디아는 기도회에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곳이 어디입니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전쟁이 막 끝난 한국의 한센인 공동체’라는 답이 돌아온다. “7살 때 라디오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았어요. 당시 이탈리아도 2차 세계대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됐었어요. 전쟁의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자신의 강 씨 성을 써 달라는 한센인 환자의 부탁과 신부였던 오빠의 이름 ‘카를라’를 따 ‘강칼라’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렇게 52년이 됐어요. 말이 안 통해도 평화를 전할 수 있죠. 어려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행복도 어려움에 비례하거든요. 함께 하는 데서 나오는 힘은 강해요. 다 가족인데 버릴 수 없죠.”(강칼라 수녀) 기도공간을 지나 예전의 상량을 그대로 살려둔 성당으로 향해본다. “실의에 빠져 살았어요. 그런데 몽당연필과 지우개 하나를 몇 십 년 쓰시는 수녀님을 TV에서 보고 다시 태어나게 됐지요”라고 밝힌 방부혁 호암마을 이장은 대학교수 일을 관두고, 10여 년 전 이곳으로 내려왔다. “성당 지은 얘기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밝힌 그의 말처럼, 고창성당 동혜공소는 60년 전 한센인들이 땅을 개간하고, 손으로 물과 모래를 퍼서 옮기며 직접 지었다. 그 성당 앞에서 촬영용 사진을 찍던 강칼라 수녀가 얼른 광주의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급하게 길을 나선다. 그녀는 아직도 2G 핸드폰을 쓰며,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직접 운전해 환자들의 병원 방문을 돕는다.

푸른 눈의 이십 대 수녀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고, 1970~80년대에 200명 이상의 한센인이 살았던 ‘동혜원’은 이제 생태 여행자를 위한 ‘식도락 호암마을’이 됐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더덕을 섞은 더덕주먹밥, 주민들이 직접 만든 솔잎 막걸리와 도토리묵, 연잎 수육 생태밥상 등 제철재료를 이용한 음식 공방 체험도 가능하다. 수녀님이 키운 꽃으로 차를 우리거나, 테라리움(식물을 기르는 유리 용기) 화분 만들기, 누에와 오디 체험이 가능하며 여름에 오면 1박에 단돈 1만 원으로 자연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모닥불도 즐길 수 있다. 마을 앞 연못 공사가 마무리되면 에코 웨딩, 도자기공방 등도 진행될 예정이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한 십자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명상을 할 수 있는 대숲 속 비밀 공간도 놓치지 말 것.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지역, 고창

‘남한의 DMZ’ 고창 운곡습지

 
‘고인돌 목장’ 같았던 고창 고인돌 유적지. 
고인돌이 1.8~2km에 걸쳐 조밀하게 군집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사진설명‘고인돌 목장’ 같았던 고창 고인돌 유적지. 고인돌이 1.8~2km에 걸쳐 조밀하게 군집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아침 저녁으로 계곡에 안개가 껴서 ‘운곡리’로 불리는 고창 운곡습지는 저수지를 만들면서 수몰된 논밭과 마을 8곳이 자연스레 습지가 된 곳이다. 선운산이 화산 활동으로 인해 토해낸 돌들은 구멍이 작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였고, 폐 농경지가 30여 년 동안 천연 습지로 천천히 회복된 것. 그렇게 멸종위기종인 삵과 수달, 담비를 포함해 864종의 동식물이 되살아났다. 운곡습지는 2011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됐고, 2013년에는 고창군 전 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국제 람사르습지 주변에 고인돌 유적지가 있는 곳은 고창이 유일하다. ‘한반도 첫 수도 고창’이라는 말은 기원전 1000년경 만든 고인돌 유적지 때문에 생겨났다. 전 세계 어디보다 빼곡하게 밀집해 있기 때문. 전 세계 6~7만기 중 한국에 4만기 정도가 있고, 그중 447기가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 있다. 이 세계 최대의 고인돌 군집 지역은 지난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운곡습지와 고인돌 유적지 모두 2014년에 국가 지정 생태관광지로 선정됐다.

수달 모양의 전기 자동차가 충전을 끝내고 출발한다. 이 탐방열차를 타면 저수지의 물을 낀 채 탐방안내소부터 습지생태공원까지 돌아볼 수 있다. 운곡습지 생태탐방은 50분~2시간 50분까지, 4코스 중 선택할 수 있다. 운곡 저수지를 우측으로 끼고 수달 전기차를 타고 동양 최대 고인돌이 있는 운곡습지 홍보관까지 달린 뒤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 구간에는 전화가 잘 통하지 않아, ‘강제 디톡스’가 가능하다. 외래종 유입을 막기 위해 습지 트레킹 전 ‘신발털이개’에 신발을 털고 들어간다. 그렇다. 습지식물들에겐 우리 인간이 위험한 외래종인 것이다. 고인돌 유적지까지 3.6km 거리다. 습지 트레킹은 마치 ‘고인돌 목장’ 같은 유적지에서 끝이 난다.

“섬진강은 청둥오리의 집이다.” 전북 보타닉 원정대로 참여했다는 초등학생이 써낸 생태여행 체험 글이다. 지역 자연환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들이 안내하는 생태여행이 아니었다면 이런 시 같은 감상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트레킹을 마치고 난 대원들에게는 보타닉 원정대 수료증과 배지, 와펜(천 뱃지) 등이 수여된다. 생태 전문가나 숲 해설사보다 투박하지만 그 거친 설명들이 오히려 마음을 건드리는 곳, 그 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으면 듣지 못했을 로컬 주민들의 땅 이야기, 물 이야기는 생태여행에서 받은 가장 큰 다정함이었다. 마을 공동체를 살리고, 자연이 흐르는 물길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들의 손길 안에서, 그렇게 자연은 돌아와 있다.

 

출처 :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0/04/443156/)

박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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