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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교룡산 둘레길 - 시작과 끝이 만나는 길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3-21 10:26:00
  • 조회361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길,

그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길

 

봄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광한루 매화가 예쁘다 하여 남원을 찾았습니다. 휘영청 달 밝은 밤. 팔작지붕 멋들어진 곳에서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후배 한 명이 다음날 아침 해장으로 교룡산 둘레길 걷기를 제안합니다. "교룡산?" 기왕이면 지리산 둘레길을 가자고 했지만 아니랍니다. 지리산 둘레길 보다 더 멋진 길이랍니다. 그 말에 혹 하여 마지막 잔을 비우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창문을 열었더니 새벽 매향이 그윽합니다. 간단히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운동화를 챙겨 교룡산 아래로 갔습니다. 가는 길 오른쪽에 멋진 유적이 보입니다.

 

"만인의총"이랍니다. 그간 남원을 몇 번이나 왔었지만 유명하다는 빵집이나 중국 요릿집에만 줄을 설 줄 알았지 아직까지 이곳을 찾지 못한 게 부끄러워 모자를 벗어들고 정문으로 들어섰습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곳이구나, 만인의총이...'


순의 탑에 절하고 기념관을 둘러보고 홍살문 아래를 지나 충의문으로 들어갑니다.

산수유나무에 핀 꽃을 보니 눈물이 흐릅니다. 산수유 꽃이 우리 백성 같습니다. 꽃인데 화려하지 않고 소박합니다. 한 송이는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많이 모이면 빛이 나는 산수유 꽃이기 때문입니다.

옷깃을 여미고 충렬사 앞에서 절하고 위로 올라갑니다. 심장이 뜁니다. 눈물이 또 납니다. 봉분 앞에서 절을 하고 무덤을 등지고 남원 시내를 바라봅니다.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내가 이제까지 남원을 잘못 왔구나.'

남원의 자존심은 춘향도 아니고 지리산도 아니고 이곳인 것 같습니다.

나라를 위할 줄 아는 사람들,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 남원 사람들입니다. 교룡산 가는 길. 지나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보입니다. 지팡이 든 노인도, 산책 나온 가족들도 다 남원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병부터 채우고 가요."

 

어느 막걸리 공장 앞에서 빈 물병을 꺼내 물을 담습니다. 술집에서 물을 나눠 주다니 역시 남원은 다른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 물맛도 그윽합니다. 다른 곳 샘물과 다른 물맛입니다. 주차장이 멋진 베트남 참전 기념비 앞에서 오른쪽으로 둘레길은 시작됩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한 가족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길을 걷습니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

길이 예쁩니다. 걷기 좋습니다. 잘 포장된 길을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부드러운 흙길이 나오고, 또 다른 모퉁이를 돌면 조약돌이 바스락 소리를 내는 다른 형태의 길이 나옵니다. 약간의 언덕을 올라 숨을 고르니 샘이 하나 나옵니다. 떠온 물도 있지만 손으로 받아 마셔봅니다.

물맛이 좋네요. 손으로 입을 훔치고 있는데 나무에 푯말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외할머니 잠드신 곳'

어떤 이의 소중한 사람이 이곳에서 영면하고 있습니다. 큰 소나무처럼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다시 길을 걷습니다. 또 다른 모퉁이를 돌아서니 이번엔 과수원이 나옵니다. 매실 과수원 매화나무에 꽃망울이 떠질 것 같습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조카의 눈망울처럼 영롱합니다.


다음 모퉁이를 도니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번엔 숲속으로 난 오솔길입니다. 작고 예쁜 나무다리를 건너 언덕을 넘습니다. 멋진 소나무 숲이 나옵니다. 길가엔 어제 태어난 것 같은 작고 귀여운 소나무 묘목들이 있습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시 포장된 길이 나오고 살짝 힘들어질 무렵 경치가 멋진 정자가 나옵니다. 벤치도 있습니다. 등을 기대고 앉으니 세상 편안합니다.

"여기 좋네, 서울 남산 둘레길 보다 백배는 좋은데"

한숨 쉬고 있는데 나그네 한 분이 지나갑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라며 자신은 반대로 도니 힘들답니다. 암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겠죠.

"이쪽도 이제부터 내리막입니다" 현답에 우답을 던지고 다시 걸어 봅니다.

나그네 말대로 좀 가파른 내리막이 나옵니다. 그림같이 휘어져 있는 내리막을 내려가니 대나무 숲이 나옵니다. 이 길도 멋있네요. 바람이 부니 소리가 납니다.

'아 이것이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구나'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는 길,

그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길

대나무 숲길을 지나니 이번엔 소나무 숲길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길입니다. 길이 정겹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같이 낯이 익고 포근한 길입니다.

한 모퉁이를 돌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광주리를이고 나오실 것 같습니다. 광주리에 손주 먹을 고구마랑 감자를 담아 가지고서요. 다음 모퉁이를 돌면 외삼촌이 지게에 나무 한 짐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씩씩 거리고 나타날 것 같습니다. 그다음 모퉁이를 돌면 초등학교 다니는 내가 신발주머니를 휘두르며 '빽~'하고 소리 지르며 나올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눈물을 훔치며 소나무 낙엽이 예쁘게 내려앉은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니 펄펄 끓는 솥뚜껑을 육자배기 사투리로 욕을 하며 들고 있는 주모가 보입니다.

주막이네요. 아니 착각입니다. 주막이 있을 것 같은 모퉁이엔 예쁜 정자가 있습니다.

주막 같아 보이는 정자 마루에 앉아 걸쭉한 막걸리 대신에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십니다.

"아까 막걸리 공장에서 샘물을 담지 말고 막걸리나 사 올걸 그랬어..."

한 두 시간 걷고 나니 막걸리가 당깁니다. 신 김치랑 두부도 당깁니다.

 

"내려가서 먹어요. 광한루 뒤에 막걸리집 많아요." 후배 말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내려가서 먹을 막걸리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어느 시인이 그랬습니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고, 먹으면 배가 부르기 때문이라고...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다.

십오분 더 걸으니 작고 예쁜 돌다리가 나옵니다.

 

"이제 다 왔네요."

국민관광지라 그런지 체육시설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흙이나 털고 갑시다."

길이 끝나는 지점은 시작하는 지점과 같습니다.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 압축공기로 흙먼지를 털어 주는 기계도 있습니다. 관리도 잘 되어 있어 깨끗합니다.

 

저 앞에 아까 출발했던 길이 보입니다. 길의 끝과 시작을 함께 보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저기 서 있었는데...'

이제 막 길에 들어서는 사람의 뒷모습이 마치 내 뒷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길의 시작과 끝은 만나는 것인가 봅니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데, 길은 항상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둘레길 여정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습니다. 아까 보았던 만인의총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 남원 시장에 들러 봄동 배추 한 포기를 샀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닮은 남원 할머니에게 샀습니다.

목욕탕을 다녀와 현관문을 열었더니 집안에 고소한 향기가 그윽합니다. 내가 사 온 봄동 배추로 아내가 전을 만들었습니다. '봄동전'입니다. 이런, 막걸리를 또 안 사 왔네요. 물맛 좋은 남원 막걸리를 함께 먹어야 할 것 같은데.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봄동전을 먹었습니다.

돌아가신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원에 두고 온 것이 많습니다. 막걸리도, 길도, 사람도요. 매화 향기 그윽한 봄날입니다.

출처 : 전북의 재발견(http://blog.jb.go.kr/221492627192)
 
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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