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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널린 플라스틱 악몽 같아” 첫 눈에 반한 섬의 ‘지킴이’ 되다

  • 작성자관리자
  • 작성일2019-05-13 10:15:00
  • 조회1162

 

발리는 온갖 종류의 환경 실험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미 산업화의 폐해를 겪은 서구 사회와 개발도상국의 환경의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자들은 때로 그에 충격을 받아, 자신들의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서, 그리고 일부는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 낯선 땅에 변화의 씨를 뿌리곤 한다.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곳곳에서 그렇게 세워진 비영리 기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개중에는 친환경 자원 활동을 명목으로 뭣 모르는 여행자들에게 거액의 참가비를 받아 수익을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지구를 살리는 데 한 손이라도 거들겠다는 실용적인 목적이다. 특히 발리는 부유하고 환경의식 높은 이민자들이 많은 곳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환경 학교, 쓰레기를 업사이클한 건축 자재 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부터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단체까지, 다양한 층위의 친환경 활동이 펼쳐진다. 인도네시아 정부 역시 때 묻지 않은 자연이야말로 발리의 가장 비싼 자원임을 안다. 지난해부터 발리의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러니 발리의 부속 섬인 누사프니다가 관광지로 뜰 조짐이 보이자 환경 활동가들이 즉각 관심을 보인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2년 사이 누사프니다에는 관공서와 결연해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개발하는 단체, 환경 교육을 위한 비영리 기구, 수자원 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에코 다이브 리조트 등이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세이브 더 플라스틱(Save the Plastic)’이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조사하고 환경 교육을 진행하는 비영리 단체다. 그들이 특히 염려하는 건 플라스틱이다. 나는 에코 다이브 리조트인 리플렉스 다이버스(Reeflex Divers)가 그들과 함께 진행한 해변 청소 이벤트에 참가한 적이 있다. 참가자는 대부분 지역민이었고, 우리는 6㎞ 거리를 걸으며 각자 지급받은 자루에 쓰레기를 모았다. 행사가 끝날 즈음엔 대형 쓰레기 트럭이 가득 찼다. 혹자는 ‘그건 한 곳의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치우는 일일 뿐,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점은 세이브 더 플라스틱 설립자인 야나(Yanitza Grantcharska)도 잘 안다. 하지만 “환경 문제에 섹시하고 간결한 답은 없다”는 게 야나의 지론이다. 그게 야나가 지역 학교들을 접촉하는 이유다. 지역민들 스스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라 믿기 때문이다. 해변 청소도 교육의 일환이다. 나만 해도 이곳에 온 뒤로 시장에 재활용 봉투를 들고 가거나 식당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포장재를 거부하는데, 그게 반복되자 처음엔 웃음을 터뜨리던 가게 주인들이 ‘아, 외지인들은 이런 거 싫어하더라’ 하면서 대안을 찾는 걸 보았다. 직접 쓰레기를 줍고, 그 양을 체감토록 하는 건 무엇보다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

야나는 누사프니다의 지역 학교를 찾아 환경 교육을 하고, 바다의 쓰레기 청소도 직접 한다. 세이브 더 플라스틱 제공
야나는 누사프니다의 지역 학교를 찾아 환경 교육을 하고, 바다의 쓰레기 청소도 직접 한다. 세이브 더 플라스틱 제공

해양 플라스틱 연구하는 NGO 
세이브 더 플라스틱 설립한 야나
누사프니다 여행 뒤 섬에 정착 

나는 여러 번 파티에서 야나를 마주쳤지만 긴 얘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는데, 해변 청소 후에 관심이 생겨 대화를 청했다. 야나는 불가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아프리카, 유럽, 하와이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2009년에 스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줄곧 바다가 내 인생을 사로잡았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벨기에에서 도시계획가로 일했죠. 그러다 2013년 해양 자원 보호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인생을 또 한 번 바꿔놨어요. 환경에 관한 조사와 추적 연구, 산호 질병 진단, 인공 암초 배치와 모니터링 등 많은 걸 배웠죠. 결국 2015년 직장을 그만두고 하와이로 떠났어요. 대학에서 1년 동안 해양 정책을 공부하면서 ‘하와이 지속가능한 해안지대(Sustainable Coastlines Hawaii)’와 일을 했죠. 태평양 한복판에 있으니 무분별한 플라스틱 소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끔찍할 만큼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그 후 코타오(Koh Tao)로 건너가 해양 플라스틱 오염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게 2017이었죠.” 벨기에에 기반을 둔 비영리 기구 세이브 더 플라스틱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은 태국과 필리핀에서 이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거기 누사프니다가 더해진 건 우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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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휴가를 보내려고 발리에 왔어요. 하지만 사방에 플라스틱이 널려 있고 사람들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고 신경이 곤두섰어요. 악몽 같았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울다시피 이 말을 하니까 그가 누사프니다를 언급했어요.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었는데, 조류보호구역이래요. 그래서 짐을 싸서 누사프니다에 왔죠. 즉각 기분이 좋아졌어요. 심지어 필리핀으로 가는 항공편을 바꾸고 예정보다 일주일을 더 머물렀어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고 하죠? 딱 그거였어요. 그사이에 멋진 사람들도 잔뜩 만났어요. 지역민들과 헤어질 때, 교육과 봉사 프로그램에 드는 돈 조금만 마련하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어요. 이듬해 4월에 약속대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여길 떠날 생각을 안 해봤어요.” 야나는 적합한 순간, 적합한 장소에 도착했다.

누사프니다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쓰레기를 불태우거나 바다에 버렸다. 과거에는 대부분 천연 재료라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도 플라스틱이 넘쳐난다.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쓰레기도 늘었다. 그럼에도 지역민 대다수는 과거의 방식을 고수한다. 얼마 전에 나는 길을 가다가 친한 동네 청년이 쓰레기 더미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한국 드라마에 심취하고 나만 보면 “아이 러브 블랙핑크!”를 외치는 유쾌한 청년인데 웬일로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거기서 뭐해?” 내가 묻자 그는 집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의 땅에 사람들이 자꾸 쓰레기를 버려서 골치 아프다고 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어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라 적힌 팻말을 세우는 중이었다. 나는 “영어로도 써야 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관광객들은 쓰레기 안 버려. 동네 사람들이 그러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계 에코 다이브 숍에서 일하는 그는 쓰레기가 그들의 관광 자원을 좀먹고 재산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지역 전체의 인식이 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을 앞당기는 게 교육이다. 

학생·교사들에게 교육 봉사하고 
봉사자들과 해변 청소 이벤트
다이빙 중 수중 쓰레기 수집하는 
시민 과학 프로젝트도 진행 중

“가장 힘든 거요? 언어 장벽이요. 내 인도네시아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학교의 영어 선생님들을 통역으로 써야 하거든요. 또 다른 문제는 ‘플라스틱이란 무엇인가? 그게 어떻게 환경을 오염시키나?’를 이해시키는 거예요.” 야나의 말이다. 세이브 더 플라스틱은 지난해 누사프니다의 4개 학교, 420명 이상의 학생·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엔 자원봉사자들과 큰 해변 청소 이벤트를 열었다. 5개 학교에서 200명 이상의 학생이 참가했고, 쓰레기 555㎏을 모았다. 이벤트가 끝난 후에는 다 같이 춤을 추며 준비된 음식과 음악을 즐겼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차후에는 더 큰 프로그램을 수행할 계획이다. 지역기구인 ‘그린 인도네시아(Green Indonesia)’와 공조해 섬 전체 60개 초·중등학교에 환경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하는 것이다. 자카르타에서 전문가들이 와서 학교당 두 명의 교사를 교육시키고, 그 교사들이 연간 30시간 이상 환경·재활용·쓰레기 등에 대해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야나와 세이브 더 플라스틱은 재원 마련에 분주하다. 목표액은 8000유로(약 1050만원)로, 프로그램이 정착될 때까지 필요한 교재 구입, 훈련, 조직화를 위한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과제인 해양 플라스틱 실태조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자원활동가들과 함께하는 일종의 시민 과학 프로젝트다. 예컨대 리플렉스 다이버스는 다이빙 중에 수중 쓰레기를 수집해 보고한다. 야나는 더 많은 다이브 숍들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 다이버들은 해양 오염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기에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해양 보존 프로그램이 다이브 숍들의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런 수요를 이용해 조사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한다는 방안이다.

야나와의 대화는 여러모로 인상 깊었다. 나는 친구들과 모임을 준비할 때조차 ‘망하면 어쩌지? 아무도 내 말을 안 따르면 어쩌지?’ 하고 쩔쩔매는 사람이라 ‘다섯 명 이상 협조가 필요한 일은 벌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그러니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 협업, 모금을 요청해야 하는 비영리 기구 같은 건 딴 세상 얘기다. 그걸 스스로 시작해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게 경이로운데, 그가 나의 가벼운 질문들에 긴 답변을 쏟아내는 걸 보고 비결을 약간은 깨우친 기분이었다. 내가 이 대화로 신문 한 면을 채울 수도 있겠다고 하자 그의 친구가 말했다. “그게 야나의 주특기야. 작은 관심에도 감동적일 만큼 성실하게 반응해서 도움을 끌어내고 말지.” 내 입장에서는 해양오염 문제도 물론 중요한데, 이처럼 다양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이 섬에서 살아가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야나의 누사프니다 생활은 어떤지 물었다. 

“진심으로 즐기고 있어요. 풍부한 자연을 간직한 은밀한 섬이면서 큰 도시인 발리에 매우 가깝죠. 삶과 일의 균형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내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거든요. 일이 곧 내 삶이에요. 열정이 인생을 사로잡았다고 해야겠네요. 나는 문자 그대로 꿈을 살고 있어요. 물론 쉽기만 한 건 아니에요. 너무 힘들고 모든 게 회의적이라 마루에 앉아 울면서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생각할 때도 있어요.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길은 찾는 건 어렵지만 일단 거기 도달하면 불가능이란 없으니까요.” 그는 자료 수집과 교육 봉사 등을 위해 찾는 방문객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인터넷에서 세이브 더 플라스틱을 검색해 그들의 웹사이트(savetheplastic.org)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대의 뜻을 보여주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데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최대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말을 하려니 가슴 한 구석이 뜨끔하다. 우리도 환경 교육을 정규 교과에 포함시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 한쪽에서는 이렇게들 애를 쓰고 있는데 말이다. 

 

출처 :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101653015&code=940100)

이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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