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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황전면 회룡리. (신정일 기자)
문득 마음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 가서 마음을 내려놓고 한껏 쉬었다 오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 있다. “지난날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도 잡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잡을 수 없다”는 <반야경(般若經)> 한 구절처럼 보이지도 않고 손에 쥘 수도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는가 만 그곳에 가서 걷다가 지치면 아무데나 멈추어 서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듣고, 어떤 때는 물 위에 발을 담그고 먼 산을 바라다보면 산이 문득 가슴 깊은 곳으로 내려앉는듯한 곳 그곳이 바로 회문산 자락을 흐르는 섬진강이다.
섬진강이 휘돌아가므로 '물우리', '물구리', 또는 '물우 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은 해마다 장마가 되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마을이다. 물이 불어 섬처럼 고립돼 며칠간 학교도 못 가게 되는 물우리 마을의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마을 입구에서 일중천이 섬진강에 합류되고 강가에 월파정(月波亭)이 있고, 아래에 깊게 파인 가마쏘가 있으며, 그 아래를 큰 여울이 흐른다. 하늘 못 본 바위 서쪽에는 맘마바우가 있고 강 건너 성미산과 회문산이 안정리에 들어가는 골짜기가 보인다.
이곳 물우리 마을에서 뒷재를 넘어가면 백양동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명산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국 각처에서 명산을 찾는 사람들과 성묘를 오는 사람들이 흰말을 타고 수없이 올라왔다고 하지만 농촌마을이 해체되어 가고 있는 지금은 그 역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일구지와 중계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은 일중리에서 장산리로 건너는 다리를 건너 진메 마을로 향한다.
이 길을 나는 얼마나 많이 오고 갔던가? 가을이면 용택이 형님이 감을 따러 오라고 해서 식구들은 다 데리고 감을 몇 포대씩 따기도 했고 좀 늦으면 이른 저녁까지 먹고 갔던 그 기억들이 내 발길을 가로막고 있다.
“저 강가가 얼마나 고기가 많던지 고기 반 물 반 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용택아 다슬기 잡아 가지고 올텡개, 불 때고 있어라”하고 나간 뒤 불 때고 있으면 금방 가서 한바가지 잡아가지고 오는디, 바가지만 가지고 가서 손으로 이렇게 더듬으면 한 주먹 되고 이렇게 하면 또 한 주먹 되고 그래서 금방 한바가지를 잡아 가지고 왔어요.“
문득 용택이 형님의 목소리가 들릴 듯 싶은 길, 그 길을 따라 흐르는 강물에 시 한 편이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흐르는 듯 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면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중략)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장산리에서 천담리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그리고 쓸쓸하다 못해 처연하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강 가운데 저마다 모습을 달리한 바위들이 들어앉아서 지나는 길손들에게 말을 건네는 곳 그 길을 휘돌아 가면 천담리에 이른다. 천담리는 활처럼 휘어 흐르고 있으며, 못(潭)처럼 깊은 소(沼)가 많다하여 천담(川潭)이라고 부른다.
천담 초등학교자리에 들어선 섬진강 수련원을 지나 내안마을에 이르고 이 일대가 바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었던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길이 아니다. 강은 휘돌아가고 우리들은 안다물(구담마을)로 가기 위해 용골산 자락을 지나가고 있는데, <남부군>의 저자인 이태는 이곳 용골산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용골산 시절을 회상하면 언제나 눈에 묻힌 거친 산야와 스산한 서북풍 만이 떠오르곤 한다. 눈에 띄는 것도 마음속도 오직 황량한 회일색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날(박민자와 같이 탈출한 날) 이후 폐허가 된 월치 마을 가까운 산기슭에 산죽을 베어 초막을 엮었다.”
얼마나 마음이 스산했으랴, 정을 주었던 여자도 떠나고 앞날은 한시앞도 내다볼 수 없이 불투명하고, 그러나 세월 속에 그런 이야기들은 활자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龜)가 많이 서식한다고 하여 구담(龜潭)이라는 설도 있고 일설에는 이 강줄기에 아홉 군데의 소(沼)가 있다고 하여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담마을 동편에 있는 마을 숲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면 하회마을처럼 강이 휘돌아가는 마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회룡마을이다.
이곳 내령(內靈)리는 본래 임실군 영계면의 지역으로 영계면에서 가장 안쪽이 되므로 안영계 또는 내령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장군목, 장구목, 장군항, 물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산(345m)과 용골산 사이 산자락 밑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장군대좌형의 명당이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 내룡마을 부근이 섬진강 중에서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 섬진강 한복판에 있는 요강바위. (신정일 기자)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들이 강을 수놓은 가운데 바라보면 볼수록 기기묘묘한 바위가 요강바위이다. 큰 마을 사람들이 저녁 내내 싸도 채워질 것 같지 않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요강처럼 뻥 뚫린 이 바위를 한때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박준열 부장이 남원 KBS에 근무하던 때였다니까 1994년쯤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마을에 와서 골재채취업자라고 한후 한참을 지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막걸리도 사주고 밤을 새워 이야기도 하면서 한 두어 달 지냈다든가 밤마다 포크레인으로 골재채취를 한다고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사람도 사라지고 요강바위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발칵 뒤집힌 마을 사람들이 남원 KBS에 연락을 해서 전국방송으로 내보낸 뒤 마을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려주어 몽타주를 만들어 보냈다. 그런 뒤 두어 달 지났을까 경기도 지역에서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그 바위가 모모지역에 있더라 그래서 경찰들을 급파해보니 자기 집에는 두지 못하고 외딴 곳에 숨겨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붙잡혀 감옥에 가고 요강바위는 약간의 상처를 입은 뒤에 이 고향에 되돌아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 수석이나 분재가 무슨 의미가 있던가, 시간을 내서 이렇게 조금만 도심에서 벗어나면 도처에 분재가 널려있고 수석들이 즐비한데 뭐 할라고 힘들여 갖다놓고 물주고 거름 주고 정성을 쏟고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 분재나 수석이 고마워할까? 그들에게 영혼이 있다면 수천 수백 년을 더불어 살아온 이웃들을 떠나 좁은 방안에 갇혀있을 그 나무나 돌멩이들이 그 모심(?)당함을 행복해할까? 내가 내 가족이, 우리 집에, 라는 개인주의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세상은 얼마나 자유스럽고 사랑스러워질까. 그런데 이렇게 큰 요강바위를 어떻게 실고 갈 생각을 했을까?
구미리가 고향인 양병완 선생의 말에 의하면 무량산에서 회문산으로 가는 루트가 이 요강바위 부근이었다고 한다. “요강바위에 빨갱이들이 다섯 명이 들어갔대요. 다섯 명이 들어간 뒤에 바위로 모자를 쓰고 있으면 토벌대들이 지나가고 그래서 살아났대요”
학명으로 돌개구멍이라고 불리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장구목에서 구미리로 이어지는 섬진강은 섬진강 530리 물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강 가운데를 수놓은 듯 들어선 바위들도 그렇지만 길가에 개암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드리운 열매들은 얼마나 신선한 기쁨을 선사하는지,
천천히 걷다가 고개 마루를 넘어서면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이른다.
순창군 이동면의 지역으로 거이 있어서 구미리龜尾里라고 이름 지은 이 마을은 6 백년 전 고려 우왕 때 직제학을 역임한 양수생의 처 이 씨 부인이 이곳에 온 뒤에 나무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냈다. 그러자 그 매들이 순창군 동계면 관전리와 구미리 그리고 적성면 농소리로 날아갔는데, 구미리 마을이 마음에 들어 구미리에 정착해 살면서 농소리에는 묘소를 썼다고 한다. 북소(쏘). 사발소. 두무소등의 소가 있는 섬진강의 구미리에서 구미교를 건너면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이고 구미교 옆에는 강경마을이라는 표지석이 서있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 섬진강을 사이로 왼쪽에 벌동산(440m)이, 오른쪽에 두류산(545m)이, 가운데에 용궐산(646m)이 보인다. (신정일 기자)
금강하류의 강경포구와 같은 이름인 강경마을도 역시 이곳에서는 갱경으로 부르는데 적성댐 수몰 예정지인 이곳 강경마을 하천에 천연기념물 제 330호인 수달이 살고 있다고 한다. 주민들과 낚시꾼 등에 의해 자주 목격되는데 하천주변과 산기슭의 바위 밑에서 수달의 발자국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석산리에서 제일 큰 마을인 선돌마을에는 높이 3m쯤 되는 선돌이 서있고 강경마을 뒤쪽에 벌동산(440m)과 두류산(545m)이 있다.
강 건너에 서 있는 정자가 구미정이고, 구미정 아래에 피어난 매화꽃이 핀 이곳에서 강 아래 보이는 지점인 평남리 일대에 적성강 댐이 예정되어 있다. 몇 번의 시도를 했으나 백지화가 되었지만 언제 다시 댐 문제가 재 점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감나뭇골 북쪽에 있는 절벽인 창바우 아래로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섬진강은 이곳에서 오수천을 받아들인다. 임실군 성수면 성수산에서 발원하여 수많은 지류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흘러와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서 적성강이라 부르는 섬진강으로 몸을 합치는 오수천을 바라보는 사이 만가지 감회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감히 현명하여라. 시작하라. 잘 살아볼 시간을 천연(遷延)시키는 일은 강을 건너려고 물이 다 흘러 가버리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니라. 그동안에도 강물은 흐르고 흘러 영원히 흘러 갈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말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고 흘러가면서 침묵으로 말하는 소리, 저렇게 들리지 않는가?
출처 : 더리포트 (http://www.therepo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765)
신정일 기자